Friday 24 February 2012

한미 FTA 발효일 확정 - 왜 무효인가?

대한민국 국회보다 한미 FTA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는 미국 언론이 있다. 통상전문지로 불리는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 Inside US Trade란 곳인데, 당근 유료다. 1년 가입비가 600 달러이고, 기사 한 건 보려면 2달러를 내야 한다. 어제 이 사이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U.S., Korea Exchange Letters Notifying All Measures Taken To Implement FTA 

그런데 이 기사에는 중요한 문서가 링크되어 있었다. 바로 한미 FTA 발효일자를 정하기 위해 외교부의 최석영 대표와 USTR의 웬디 커틀러가 서명한 서한이다(다운해서 구글 닥스에 올려놓은 문서는 여기). 외교부도 이 서한을 공개했는데, 당연히 정식 서명본은 공개하지 않고 내용만 공개했다(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미 FTA 협정문도 정식 서명본이 아니라 복사본이다. 당사자의 서명이 없는 계약서를 공공기관에 한번 제출해보시라. 어떤 공공기관도 접수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회는 참 너그럽다).

2월 20일로 날짜가 기재되어 있는 이 서한을 보다가 이상한 문구를 발견했다. 웬디 커틀러가 보낸 서한에 이런 문구가 있다.

I am pleased to inform you that my Government has introduced or will introduce a number of laws, regulations, and other measures to implement its commitments under the KORUS in anticipation of exchanging written notification with your Government certifying that we have each completed our respective applicable legal requirements and procedures with respect to the KORUS. (밑줄은 필자) 

 의문점은 2가지다.

 첫째, 미국은 한미 FTA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앞으로 더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완료형으로 표현한 "has introduced" 다음에 "will introduce"라고 하여 앞으로 이행할 것이라는 미래형으로 얘기하고 있다.

둘째, 각자 필요한 법적 요건 및 절차를 완료하였다는 서면통보는 아직 교환되지 않았지 않은가?(위에서 밑줄친 "in anticipation of exchanging written notification") 그럼 이 서한 이후에 정식 서한을 교환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한국 정부가 공개한 서한 번역본을 통해서도 이런 의문을 그대로 품을 수 있다.

"본인은 미합중국 정부가 한·미 양측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우리 각자의 적용가능한 법적 요건과 절차를 각각 완료하였음을 확인하는 서면보를 대한민국 정부와 교환하기를 기대하면서, 미합중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상의 미합중국 정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다수의 법, 및 그 밖의 조치들을 도입하였거나 도입할 것임을 통지하게 되기쁘게 생각합니다. ... 웬디 커틀러/무역대표보"

그런데 왜 한국 정부는 이 서한을 교환한 다음 "서한을 교환함으로써 한·미 양측은 이행점검협의를 마무리 하였다"고 발표했을까?(외교부 2월 22일자 보도자료 참조) 서한에 기재된 날(2월 20일) 바로 다음 날 외교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협정 제24.5조 제1항에 따른 외교공한을 2월 21일 오후 6시에 교환했다("2. 21(화) 오후 6시 양국은 한·미 FTA 협정 제24.5조제1항에 따라, 발효를 위한 국내 법적·절차적 요건이 완료되었고, 발효일을 3. 15(목)로 합의하는 외교 공한을 교환하였다."). 그럼 협정 발효를 발표하면서 정식 외교 공한은 왜 공개하지 않았을까?

최석영 대표가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도 정식 외교 공한은 공개하지 않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최석영 대표가 미국이 아직 이행하지 않은 사항이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밝혔다는 점이다. (브리핑 속기록은 여기)

"자료 7쪽부터 미국의 주요 이행법령 현황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우선 미국은 한·미 FTA 이행법을 통하여 8개의 법률을 개정하고, 6개의 권한을 이미 신설한 바 있습니다.
   이에 추가하여 미국무역대표부, 국제무역위원회, 섬유협정이행위원회, 연방조달규제위원회, 세관국경보고국, 주류담배무역관리국 등 6개 관련기관은 7개의 필요한 규정을 이미 개정하였거나 또는 발효 전까지 개정을 완료하기로 서면으로 약속하였습니다.
   우리와 달리 미국의 입법조치가 완료되지 않은 것은 한·미 FTA 이행법에 따라 일부 규정이 절차적으로 양측간 협의가 종료되고, 미 대통령의 포고문이 공포된 이후에 도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금번 이행점검 협의를 통하여 미 측이 발효 전까지 입법조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서면으로 받았습니다." (밑줄은 필자)

 미국의 입법조치가 완료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최석영 대표는 미국의 이행법을 언급하면서 미 대통령의 포고문이 공포된 이후에 일부 규정이 도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당시 브리핑에 참석했던 기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 질의를 하지 않았다. 미국을 배려하는 마음은 통상관료나 기자들 모두 한통속이거나, 내가 뭘 잘 모르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테다).
 
최석영 대표가 설명한 건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 제103조를 말한다. 내용이 좀 길지만 이행법 제103조는 이렇게 되어 있다.

SEC. 103. IMPLEMENTING ACTIONS IN ANTICIPATION OF ENTRY INTO FORCE AND INITIAL REGULATIONS.
(a) IMPLEMENTING ACTIONS-
(1) PROCLAMATION AUTHORITY- After the date of the enactment of this Act--
(A) the President may proclaim such actions, and
(B) other appropriate officers of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may issue such regulations,
as may be necessary to ensure that any provision of this Act, or amendment made by this Act, that takes effect on the date the Agreement enters into force is appropriately implemented on such date, but no such proclamation or regulation may have an effective date earlier than the date on which the Agreement enters into force.
(2) EFFECTIVE DATE OF CERTAIN PROCLAIMED ACTIONS- Any action proclaimed by the President under the authority of this Act that is not subject to the consultation and layover provisions under section 104, may not take effect before the 15th day after the date on which the text of the proclamation is published in the Federal Register.
(3) WAIVER OF 15-DAY RESTRICTION- The 15-day restriction in paragraph (2) on the taking effect of proclaimed actions is waived to the extent that the application of such restriction would prevent the taking effect on the date the Agreement enters into force of any action proclaimed under this section.
(b) INITIAL REGULATIONS- Initial regulations necessary or appropriate to carry out the actions required by or authorized under this Act or proposed in the statement of administrative action submitted under section 101(a)(2) to implement the Agreement shall, to the maximum extent feasible, be issued within 1 year after the date on which the Agreement enters into force. In the case of any implementing action that takes effect on a date after the date on which the Agreement enters into force, initial regulations to carry out that action shall, to the maximum extent feasible, be issued within 1 year after such effective date.

먼저 제103조(a)(1)을 보면, 이행법이 입법된 후에 (A) 대통령은 이행조치를 공포할 수 있고, (B) 다른 행정부 공무원들도 이행 조치를 공포하거나 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제103조(a)(1)(B)는 다른 행정부 공무원들이 공포하거나 제정한 이행조치가 시행되는 날을 협정 발효일 전의 날로는 할수 없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행정부에 의한 이행 조치의 제정이 반드시 대통령의 이행조치 공포 이후에만 가능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제103조(a)(1) 본문에는 분명히 미국 이행법이 입법된 이후에는 다른 행정부 공무원들이 이행조치를 공포하거나 제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미국 이행법은 오바마가 이미 서명까지 해서 작년에 입법이 완료되었다).

그럼 최석영 대표의 설명이 잘못 되었다는 말이 된다. 최석영 대표는 미국 대통령이 이행조치 공포를 한 다음에야(공포를 포고문이라고 잘못 설명한 부분) 비로소 다른 부처에서 이행조치를 제정할 수 있어서, 아직 미국은 이행에 필요한 조치를 완료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석영 대표의 브리핑도 문제가 있지만, 미국의 이행법 제103조는 문제가 더 많다. 제103조(b)를 보면,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행정조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최초 규정(initial regulations)은 협정 발효일로부터 1년 이내에만 제정되면 충분하다. 협정의 국내법적 효력을 전면 부인하는 제102조도 모자라, 이행을 위해 필요한 행정조치 계획도 발효 후 1년 이내에만 시행하면 된다는 법을 제정하고 미국은 이걸 한미 FTA 이행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만약 한국이 이렇게 했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미국은 협정 발효일에 합의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이행법 제103조의 불평등 문제는 국내에서 이미 여러차례 지적된 바 있다. 가령 "법률 개정 절차만 봐도 한미 FTA는 불평등 조약", "한미 FTA 발효도 날치기하려는가?" 

미국 이행법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한미 양국 통상관료들이 이번에 합의한 발효일자가 과연 절차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자. 협정문제24.5조 제1항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이 협정은 양당사국이 각자의 적용가능한 법적 요건 및 절차를 완료하였음을 증명하는 서면통보를 교환한 날부터 60일후 또는 양 당사국이 합의하는 다른 날에 발효한다. (This Agreement shall enter into force 60 days after the date the Parties exchange written notifications certifying that they have completed their respective applicable legal requirements and procedures or on such other date as the Parties may agree.)" 

미국이 한국에 보낸 서면에서 "법적 요건 및 절차를 완료하였음을 증명"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이 서면통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서면통보를 했다고 하더라도 미국 정부는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서한은 협정 제24.5조 제1항에 따른 서면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협정은 양국 행정부가 합의한 날(3월 15일) 발효될 수 없다.

웬디 커틀러와 최석영 대표가 교환한 2월 20일자 서한에는 분명히 협정 이행에 필요한 조치들은 도입하였거나 도입할 것임을 통지했다. 그런데 앞으로 도입할 조치들을 어떻게 불과 하루이틀만에 도입하였다고 증명하는 서한을 보낸다는 말인가? 최석영 대표의 브리핑만 보더라도, 미국은 협정 제24.5조 제1항에 따른 서면을 한국 정부에 보낼수 없다.

2월 20일자 서한에 첨부되어 있는 목록 이외에도 미국은 협정 이행을 위해 법률 개정을 더 해야 되며, 최소한 이 작업이 완료되지 않는한 미국은 협정 발효를 위한 서면통보를 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다른 글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 내용은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직무유기죄로 고발한 고발장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 부분은 내용도 길고 복잡하니 더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최석영 대표는 브리핑에서 이렇게 설명하면서 이 문제를 피해갔다. 

이행 협의 과정에서 우리는 김종훈 전임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한 작년 검찰에 접수된 11월 29일자 고발장에 적시된 네 가지 이슈에 대한 미측의 입장을 문의한 바 있습니다. 미측의 설명은 네 가지의 제기사항, 3건의 지재권과 관련된 사항이 있고 1건의 국가배상에 관련된 사항이 있습니다만, 그 4가지 제기사항에 대하여 협정 상의 규정과 미국의 국내이행법령이 일치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였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동 건은 검찰에 계류가 되어 있는 이슈이기 때문에 추후 적절한 경로를 통하여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나는 이 설명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3건의 지재권과 관련된 사항은 미국 어메리컨 대학의 지재권 교수 Sean Flynn를 통해서도 이미 확인을 받았고, 내가 아는 법률지식으로는 최석영 대표와 같은 답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Sean Flynn 교수의 의견서는 여기).

김종훈 전 본부장을 고발한 바로 다음날 외교부의 이태호 국장과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고발장에 적시된 사안과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토론을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당시 이 국장은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고발장에 지적된 내용에 대해 미국 로펌과 국내 로펌에 법률자문을 구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이 일이 있은지 몇 주 후에 외교부에 다시 전화를 해, 당시 FTA 이행과 과장과 통화를 했다. 이행과장은 고발장에서 적시한 내용이 설득력이 있어 보여서 이행점검과정에서 미국측에 질의를 했고, USTR은 문제가 없다고 답변을 했지만 우리측에서 계속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저작권법과 형법이 한미 FTA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양국 통상관료들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먼저 미국으로서는 이행법에서 저작권법이나 형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 이제와서 이를 바로 잡으려면 저작권법과 형법 개정안을 의회에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한국 통상관료에게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미국 의회가 언제 법 개정을 할지 알 수가 없고, 그만큼 한미 FTA 발효일이 늦추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미국으로서는 FTA가 요구하는 의무를 회피할 수 있고, 한국 통상관료들은 이 문제를 덮음으로써 발효일을 앞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

최석영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한다. 고발장에 적시된 사안에 대해 필자와 공개적으로 토론할 것을. 

공개 토론의 결과 만약 내가 잘 몰라서 미국이 저작권법과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그리고 나의 잘못이 법리적으로 타당한 것이라면, 필자도 두말없이 승복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토론이 김종훈 전 본부장의 고발 건 때문에 곤란하다면, 고발을 취하할 용의도 있다. 

필자 개인의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법률가의 양심을 걸고 이 토론을 제안하면서, 외교부의 진지한 답변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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